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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무원이면 육아휴직만큼은 눈치 안 봐도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아이 병원, 어린이집 등하원,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이 생길 때마다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조용히 처리하는 분들을 종종 봤습니다. 제도가 있다는 것과 실제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공무원 육아휴직 (돌봄 불평등, 비정규직 장벽, 조직문화)

육아휴직, 숫자 뒤에 감춰진 돌봄 불평등

2024년 일반직 공무원 육아휴직 신청자는 총 2만 506명이었습니다. 이 중 여성이 74.3%(1만 5,231명), 남성이 25.7%(5,275명)를 차지했습니다(출처: 민주노동연구원). 숫자만 보면 여성 공무원이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 시점과 기간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앙정부기관 기준으로 남성 신청자의 76%는 1년 미만의 단기 육아휴직을 사용했습니다. 반면 여성은 1년 이상 사용 비중이 40.7%로, 남성(24.0%)보다 16.7%포인트 높았습니다. 직급 분포도 갈렸습니다. 남성은 7급과 6급, 5급 순으로 비교적 높은 직급에서 사용이 집중됐고, 여성은 7급과 8급에 몰렸습니다. 임신과 출산이 집중되는 낮은 직급에서 여성이 더 길게 쉬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승진 경력 인정 기간이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승진 경력 인정 기간이란 육아휴직 중에도 인사 평정에 반영되는 근무 기간을 뜻하는데, 공무원은 육아휴직 전체 기간이 이에 해당합니다. 제도만 보면 불이익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들어보니, 실제 조직에서는 장기 휴직 후 복귀하면 중요 업무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 지점에서 벌어집니다.

한 여성 공무원이 "승진을 아예 내려놓으면 편하게 다닌다"고 말한 부분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체념적 장기 휴직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체념적 장기 휴직이란 승진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한 여성이 경력 경쟁을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장기로 선택하는 흐름을 가리킵니다. 권리를 쓰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에서 나오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비정규직 공무원에게 더 높은 장벽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이면 고용이 안정되어 있고 육아휴직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정규직 공무원의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2024년 육아휴직 신청자 2만 506명 중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218명, 일반임기제 공무원은 162명에 그쳤습니다. 여기서 일반임기제란 특정 사업이나 직위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기간만 계약하는 비정규직 형태의 공무원을 말합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고 재계약 여부에 따라 고용이 유지됩니다.

 

행정안전부 인사통계를 보면, 일반직 공무원의 평균 근무연수는 13.5년인 데 반해 시간선택제는 8.6년, 일반임기제는 5.8년에 그쳤습니다(출처: 행정안전부). 근속 기간 자체가 짧으니 육아휴직을 쓸 타이밍이 오기도 전에 계약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이 상존합니다. 한 임기제 공무원은 "재계약이 안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육아휴직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했는데, 이 말이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시간선택제의 경우 근무시간이 짧아 기본 급여 자체가 적습니다. 시간선택제란 통상 근무시간보다 짧은 주 15시간 이상 35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공무원 형태를 말합니다. 이미 줄어든 급여에서 육아휴직 수당으로 더 삭감되면 생계가 흔들린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한 제도가 경제적 이유 앞에서 사실상 사용 불가 상태가 되는 겁니다.

 

비정규직 공무원이 처한 현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계약 불안으로 육아휴직 신청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
  • 짧은 근속 구조로 육아휴직 사용 기회 자체가 제한
  • 낮은 급여로 인한 경제적 부담 가중
  • 정규직 전환 전까지 조직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육아시간이 만들어낸 조직 내 갈등

하루 최대 2시간까지 쓸 수 있는 육아시간 제도도 제가 직접 주변에서 들어보니 생각보다 갈등의 진원지였습니다. 육아시간이란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이 하루 최대 2시간을 단축 근무하거나 별도의 돌봄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제도 취지 자체는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2시간의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는 것입니다.

민원 전화를 대신 받거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동료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오래전부터 대체인력 보상 제도 도입을 요구해왔지만, 예산 문제를 이유로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자기 권리 다 챙겨 먹는다"는 말이 나오는 구조가 됩니다. 사용자는 눈치를 보고, 비사용자는 불만이 쌓이는 악순환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갈등은 육아시간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업무 공백을 보전하는 시스템 없이 제도만 도입했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승진 평정상 불이익 제거, 비정규직 고용 안정,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처럼 육아시간 사용에 따른 업무 공백 보전 역시 함께 가야 할 과제입니다. 어느 하나만 개선해서는 조직 안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육아휴직 사용률을 얼마나 끌어올렸느냐보다, 누가 불이익 없이 실제로 쓸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공공부문이 먼저 실질적인 돌봄 친화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민간에도 기준이 생깁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그 제도가 작동하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한 과제라는 걸 이번 자료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참고: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14131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