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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서 기름값 고지서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지 않으십니까. "중동에서 또 뭔가 터졌나?" 저도 그랬습니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뉴스를 뒤적이면 어김없이 호르무즈 해협 얘기가 나왔고, 그때마다 막연하게 "미국이 어떻게든 하겠지"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막연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37일의 폭격이 남긴 것: 미국 패권의 균열
미국이 중동 분쟁에서 뒤처진다는 그림은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처음엔 "설마"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압도적인 해군력과 전략폭격 능력을 가진 나라가 이란 하나를 못 잡는다고?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37일간 이란을 집중 타격했습니다. 국가 지도부 상당수를 제거했고 군사 시설 대부분을 파괴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란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단 한 가지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환점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을 폭격한 직후 찾아왔습니다. 이란은 즉각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 수출 시설인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도시를 보복 타격했고, 그 피해는 수년이 지나도 복구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추가 공격을 중단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모라토리엄이란 일정 기간 특정 행위를 유예한다는 선언으로, 쉽게 말해 "일단 멈추겠다"는 공식 발표입니다.
제가 이 흐름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가 반드시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군사적으로 압도했지만 원하는 결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패배들은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결정적인 목줄과 얽히지 않았습니다. 이번은 다릅니다.
이란 전문가 수잰 멀로니는 이 정권이 자국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가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22년 대규모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던 정권이 봉쇄의 고통 앞에서 무릎을 꿇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뜻입니다.
핵심 분석: 해협 통제권이 바꾸는 세계 지형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닙니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출처: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이 좁은 길목을 누가 통제하느냐는 에너지 안보, 즉 한 나라가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와 직결됩니다. 에너지 안보가 흔들리면 유가만 오르는 게 아니라 물가, 식량, 제조원가, 환율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교과서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며칠 안에 반응하는 걸 반복해서 목격해 왔습니다.
이란이 해협을 사실상 장악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핵심 파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란은 통행 선박에 조건을 걸거나 사실상의 통행료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 자국과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의 선박은 통항을 지연시키거나 차단할 수 있습니다.
-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 없이 독자 생존을 모색해야 합니다.
- 에너지를 걸프에 의존하는 유럽, 일본, 한국, 인도는 이란과 별도의 협상 경로를 열어야 합니다.
해협 통제는 이란이 보유한 잠재적 핵 능력보다 훨씬 즉각적인 레버리지입니다. 여기서 레버리지란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협상 지렛대를 말합니다. 핵 능력은 실제 사용이 어렵고 국제사회의 반발이 크지만, 해협 통제는 당장 세계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카드입니다.
이란의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존재감도 커집니다. 중국은 이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혼자 해협을 다시 열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는 상황이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유리합니다. 미국의 패배를 지켜보는 동맹국들, 특히 동아시아와 유럽에서는 "과연 미국이 위기 때 우리 편에 설 것인가"라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출처: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영국과 프랑스가 휴전 이후 해협을 감시하겠다고 나섰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이 연합체가 해협이 평온할 때만 활동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즉, 호위가 필요 없을 때만 호위한다는 말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발표였습니다. 상황이 위험해질수록 존재감이 사라지는 안전장치라면, 처음부터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앞으로의 전망: 교착 상태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
미국이 현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세 가지입니다. 전면 확전, 현상 유지, 또는 사실상의 후퇴입니다. 전면 확전은 이란의 에너지 시설 보복으로 인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심지어 200달러까지 치솟는 시나리오를 각오해야 합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식량 위기가 겹치는 상황에서 이 선택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 지지기반도 크게 손상시킬 것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비판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 상황을 "미국의 일방적 패배"로만 보는 시각은 이란 내부의 압박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 제재, 인플레이션, 시민 불만, 에너지 인프라 피해는 이란 정권에도 장기적으로 무거운 짐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 상황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보다 양측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쌓아가는 전략적 교착 상태(strategic stalemate)에 가깝습니다. 전략적 교착 상태란 어느 쪽도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소모전만 지속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세계적 파장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분쟁을 통해 2류 강대국과의 몇 주간 충돌만으로도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위험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신호를 시진핑과 푸틴이 어떻게 읽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신뢰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할 것은 확실합니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군사 대결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외교 협상, 국제 해상질서가 복합적으로 얽힌 위기입니다. 누가 체면상 이겼느냐보다 어떻게 해협 통항을 안정시키고, 전쟁이 세계 경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을 협상 구조를 만드느냐가 진짜 문제입니다. 중동의 불안이 주유소 기름값으로, 수입 물가로, 결국 우리 일상으로 번져오는 것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그 파장이 더 길고 넓게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련 동향을 계속 지켜보되, 에너지 가격과 환율 흐름을 함께 살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또는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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