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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동 뉴스를 볼 때마다 '누가 이겼고 누가 졌나'에만 집중했는데,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나라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고집하느냐가 전쟁의 본질을 결정합니다. 지금 미국-이란 전쟁이 딱 그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종전 조건: 근본 해결이냐 타협이냐

국제정치학에서 전쟁 종결을 분석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과 '타협적 평화'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이란, 전쟁을 촉발한 원인 자체를 제거해 재발 가능성을 없애는 방식을 말합니다. 반면 타협적 평화란 분쟁의 불씨를 완전히 끄지 못한 채 일단 멈추는 선택입니다. 쉽게 말해, 전자는 뿌리째 뽑는 것이고 후자는 불씨 위에 흙을 덮어두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킨 포에니 전쟁, 연합국이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2차 세계대전은 전자에 해당합니다. 반면 한반도 분단이라는 화근을 남긴 채 정전협정으로 끝난 한국전쟁은 후자입니다. 저는 이 구분을 접하면서 한국이 여전히 정전 체제(Armistice Regime) 아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정전 체제란 전쟁을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니라 전투 행위만 잠시 멈춰둔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사실 '타협적 평화'의 연장선이라는 것,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이렇게 체감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과 이란의 상황에 이 틀을 적용하면, 왜 협상이 쉽게 풀리지 않는지 이해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네타냐후의 계산: 전쟁을 끝내고 싶지 않은 이유

솔직히 처음엔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빨리 협상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이 '장엄한 분노' 작전을 통해 이란 수뇌부를 겨냥했을 때, 두 나라의 목표는 애초에 달랐습니다. 트럼프에게 이 전쟁은 11월 중간선거라는 국내 정치 일정과 연동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네타냐후에게는 달랐습니다. 미국이라는 군사·경제적 거인의 힘을 빌려 사실상 공짜로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신정 체제(Theocracy)를 무너뜨리고 핵 위협을 영구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정 체제란 종교 지도자가 정치 권력을 쥐고 국가를 통치하는 정부 형태를 말합니다.

이란이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며 반격에 나서자 상황은 복잡해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한 채 결사 항전을 외치는 이란을 상대로 지상군 투입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기는 트럼프에게 부담이 컸습니다. 트럼프가 협상 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이란 간 협상이 성사되기 전에 이란의 주변 영향력을 최대한 약화시켜두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은 과거에도 수차례 시도됐습니다. 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JCPOA란 2015년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이 체결한 핵 합의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출처: 외교부). 트럼프 1기 때 이 합의를 파기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란 입장에서는 어떤 합의도 다음 정권에서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불신이 깊게 깔려 있을 것입니다.

트럼프의 역할: 전략가인가 꼭두각시인가

이 부분에서 저는 논평의 시각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물음표를 달게 됩니다.

트럼프를 '명확한 전략적 목표 없이 부유하는 거대한 꼭두각시'라고 표현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표현이 글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분석의 균형성 면에서는 다소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정치에서 한 나라의 외교 방향이 지도자 한 명의 성격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중동 정책에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이해관계, 의회의 친이스라엘 로비, 에너지 안보 계산 등 구조적 요인이 함께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군산복합체란 군사 관련 산업과 정부·군 사이의 유착 관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전쟁과 무기 산업의 지속적 확대를 지지하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물론 트럼프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해 동맹국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뉴스를 보면서 느낀 것도 그 지점입니다. 트럼프의 발언 하나하나가 협상 테이블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우라늄 농축(Uranium Enrichment)과 관련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우라늄 농축이란 천연 우라늄에서 핵무기 또는 원자로 연료로 쓸 수 있도록 특정 동위원소의 비율을 높이는 기술 공정을 말합니다.

트럼프가 전략적 주도권을 쥔 행위자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전략 안에서 움직이는 변수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판단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전쟁의 전개 방향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란의 우라늄 농축 수위와 핵 능력 유지 의지
  •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
  • 미국 중간선거 일정에 따른 트럼프의 국내 정치 압력
  • 레바논·가자 전선 확대 여부와 이스라엘의 추가 공세 강도
  • JCPOA 이후 새로운 핵 합의 가능성

한미동맹과 우리의 시선

제가 이 논의를 단순한 중동 문제로 흘려보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강대국과 주변국이 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비대칭 동맹 구조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비대칭 동맹(Asymmetric Alliance)이란 국력 차이가 큰 두 나라 사이의 동맹으로, 약한 쪽은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 강한 쪽의 전략적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고 있는 구도가 정확히 이 틀 안에 있습니다.

이란-이스라엘-미국 삼각관계를 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한반도 시나리오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타협적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미국의 핵전략 문서인 NPR(핵태세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 제공 대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방부).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의 가치를 거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 보장이 얼마나 실질적인지는 계속 검토가 필요합니다.

중동 전쟁을 먼 나라 이야기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대국과 주변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작은 나라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지금 이 전쟁은 그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지금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이 급격히 고조되지는 않겠지만 쉽게 마무리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종전의 조건이 누구의 이익을 반영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 중동 지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논의를 계기로 한미동맹과 비대칭 동맹 구조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께는 미일동맹의 역사와 구조를 다룬 전문 연구를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그 과정에서 한국의 위치가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외교·안보 분야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msn.com/ko-kr/news/opin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