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의 처녀들 (입체주의, 문화적 전유, 헨리 테일러)
걸작이라고 불리는 그림 앞에서 처음 든 생각이 "이게 왜 유명하지?"였다면, 저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을 잔뜩 품고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 화가가 있습니다. 미국의 헨리 테일러입니다.

입체주의의 탄생, 그 뒤에 가려진 뿌리
1907년 파블로 피카소가 처음 이 그림을 동료들에게 공개했을 때, 반응은 찬사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는 "휘발유를 들이켠 기분"이라 했고, 앙리 마티스는 그림 속 여성들을 보고 분개했다고 전해집니다. 대중 전시는 9년이나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브라크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접근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의 공포와 혐오가 결국 영향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1939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이 작품을 현대미술의 대표작으로 수집했습니다(출처: MoMA).
이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입체주의(Cubism)의 토대를 놓았기 때문입니다. 입체주의란 하나의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모습을 한 화면에 합성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정면과 측면, 위에서 본 시각을 한꺼번에 화면에 담아내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당시까지 서양 미술을 지배하던 자연주의(naturalism)를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자연주의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미술적 태도를 말합니다.
제가 영국 내셔널갤러리를 관람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대순으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회화가 단순히 "더 잘 그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렘브란트의 빛, 벨라스케스의 공간, 그리고 피카소의 해체까지, 각 시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그것을 화면에 번역했습니다. 미술은 기술이 아니라 언어라는 생각이 거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혁신의 뿌리를 파고들면 불편한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피카소는 작품을 완성하기 수개월 전부터 아프리카 가면과 조각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티스가 콩고(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가져온 소형 조각상이 계기였고, 이후 피카소는 파리의 트로카데로 인류학 박물관을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수백 장의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 속 두 여성의 가면 같은 얼굴이 바로 그 영향의 흔적입니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습니다. 1920년 한 비평가에게 아프리카 예술의 영향을 묻자 "그런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의 핵심입니다. 문화적 전유란 특정 문화권의 예술, 상징, 관습 등을 그 문화의 맥락과 의미를 존중하지 않은 채 외부인이 가져다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프리카 가면은 그 자체로 고유한 종교적, 사회적 의미를 담은 문화적 산물이었습니다. 그것을 미학적 충격의 재료로만 쓰고 출처는 지웠다면, 그 혁신이 전적으로 순수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피카소와 '아비뇽의 처녀들'을 둘러싼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체주의의 혁신성: 여러 시점을 하나의 화면에 결합하여 서양 미술의 원근법 체계를 해체
- 아프리카 예술과의 관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피카소가 평생 이를 축소·부정
- 여성 재현의 문제: 나체 여성들이 거칠게 해체된 방식이 미학적 실험인지 대상화인지에 대한 논쟁
- 작품의 최종 평가 전환: 초기의 공포와 혐오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재평가
문화적 전유와 헨리 테일러의 재해석
원작이 탄생한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07년, 헨리 테일러는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이 작품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가 완성한 '콩고에서 수도로, 그리고 다시 블랙으로(From Congo to the Capital and Black Again, 2007)'는 현재 파리 국립 피카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회고전 "헨리 테일러: 생각이 도발하는 곳"에서 전시 중입니다(출처: 파리 국립 피카소 미술관).
테일러는 원작의 구도와 다섯 인물의 자세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달라진 것은 인물들의 피부색입니다. 어두운 피부의 인물들로 바꿈으로써 테일러는 원작이 지우고 싶었던 연결고리, 즉 아프리카 예술과의 관계를 전면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제가 이 재해석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테일러가 단순히 피카소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같은 구도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원작을 인정하는 제스처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무엇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부재를 드러내는 재현이랄까요. 이 방식이 정면 반박보다 훨씬 더 강한 비판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두 작품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차이가 납니다. 피카소의 원작 속 여성들은 날카롭게 분절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화가 프랑수아즈 질로에게 남긴 피카소의 말처럼 여성을 "고통받기 위한 기계"로 바라본 시선이 작품에도 스며 있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되어왔습니다. 반면 테일러의 인물들은 덜 해체되어 있고, 더 강한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화면 중앙의 인물은 미국계 프랑스인 무용수이자 가수였던 조세핀 베이커를 떠올리게 하는 비대칭 단발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체성과 인종, 재현에 관한 문제가 작품 안으로 들어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재해석은 원작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원작이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이어받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미술관에서 시대순으로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한 작품의 의미는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시선들이 쌓이면서 계속 달라집니다. 테일러의 작품이 있어야 피카소의 원작도 더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다시 꺼내고 싶습니다. 걸작이라는 평가는 한 번 내려지면 완성되는 것인지, 아니면 매 세대가 다시 묻고 다시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아비뇽의 처녀들'을 둘러싼 100년 이상의 논쟁은 후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피카소의 혁신은 분명히 실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혁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몸이 그 충격의 재료로 사용되었는지를 함께 보지 않으면 절반만 본 셈입니다. 테일러의 재해석은 나머지 절반을 보여줍니다. 파리 국립 피카소 미술관에서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술관이 그 질문을 이제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그 공간이 어떤 분위기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