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사건 (위험 징후, 스토킹 신고, 분노 범죄)
어린이날 밤 0시, 혼자 귀가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접하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피의자 장윤기(23세)는 범행 전 이미 스토킹 신고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신호는 있었는데, 왜 막지 못했을까요.

범행 전 위험 징후는 왜 걸러지지 못했나
저도 늦은 밤 귀갓길에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면 이어폰을 빼고 걸음을 빠르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막연한 불안이 사실 근거 없는 과민반응이 아니었다는 걸,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다시 실감합니다.
장윤기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외국인 여성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해당 여성은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 그를 스토킹 가해자로 112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고는 정식 수사로 이어지지 않고 종결됐습니다. 이후 장윤기는 분노를 품고 여성을 찾아다녔고, 그녀가 타지역으로 떠나자 범행 대상을 바꿔 귀가 중이던 여고생에게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짚어야 할 개념이 관계성 범죄(Relational Crime)입니다. 관계성 범죄란 피해자와 특정 관계에 있거나 관계 형성을 시도한 가해자가 그 관계에서 비롯된 집착, 분노, 통제욕 등을 동기로 저지르는 범죄를 말합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그 전형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스토킹 신고 이전에도 폭행과 성폭행 관련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고위험 징후가 나타나는 인물을 어떻게 사전에 관리할 것인지가 이 사건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2023년 스토킹처벌법 개정으로 잠정조치 및 긴급응급조치 요건이 일부 강화되었지만,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출처: 법무부).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확인한 위험 신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르바이트 동료에 대한 일방적 집착 및 스토킹 행위
- 범행 이틀 전 스토킹 신고 접수 (정식 수사 미이행)
- 신고 이전 폭행 및 성폭행 관련 사건 전력
- 특정 대상을 향한 살인 예비 정황 확인
신고가 종결된 경위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 범죄의 구조, 그리고 우발적이라는 말의 허구
장윤기는 경찰 조사에서 "사는 게 재미없었다", "자살하려 했다", "누군가를 데리고 가려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우발적 범행이라는 뉘앙스입니다. 제가 이 진술을 처음 읽었을 때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건 설명이 아니라 면피다.'
경찰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범행 직후 차량과 택시를 갈아타며 이동하고, 무인세탁소에 들러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계획 없는 우발적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들입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 이상동기 범죄가 아닌 분노 범죄(Anger Crime)로 결론 내렸습니다. 분노 범죄란 특정 대상에 대한 원한이나 좌절이 해소되지 않을 때, 그 감정이 불특정 약자를 향한 공격으로 전이되는 범죄 유형을 뜻합니다. 즉, 처음부터 피해 여고생을 노린 것이 아니라, 본래 대상을 찾지 못한 분노가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또한 경찰은 살인예비죄를 추가 적용했습니다. 살인예비죄란 실제 살인 행위에 앞서 그 범행을 준비했다는 사실 자체를 처벌하는 죄목으로, 계획성이 입증될 경우 단순 우발 범행과는 양형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범행 이후 장윤기는 고개를 든 채 담담한 표정으로 호송차에 올랐고, 취재진의 질문에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짧게 남겼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미안함'과 '반성'이 과연 같은 건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또래 남학생까지 공격당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선의로 도움을 주려던 행동이 위험으로 돌아오는 상황, 이걸 어떻게 개인의 조심성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바뀌어야 할 것들
이 사건은 단순히 잔혹한 범죄 하나로 끝나선 안 됩니다. 구조적으로 무엇이 실패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Protective Measure)란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 접근 금지, 통신 금지, 유치장 유치 등을 법원 결정으로 강제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신고 단계에서 이 조치가 신속히 발동됐다면 이후의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요건과 실질적 위험 사이의 간극이 이번 비극을 만들었다면,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프로파일링(Profiling) 기법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파일링이란 범죄자의 행동 패턴, 심리적 특성, 과거 전력을 분석해 위험도를 사전에 평가하는 수사 기법입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프로파일러 면담을 포함한 행적 재구성을 진행했는데, 이런 위험성 평가가 사후 수사가 아닌 사전 예방 단계에서도 작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위험성 조사 도구(K-SARA)를 도입해 운용 중이지만, 현장 적용률과 체계적 연계가 충분한지는 점검이 필요합니다(출처: 여성가족부).
광주경찰청은 이번 사건에서 광주 지역 최초로 살인 피의자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신상정보 공개 심의를 통해 범행의 잔인성과 국민 알 권리를 종합 판단한 결과입니다. 신상 공개는 재범 억제와 사회적 경고 효과를 위한 것이지만, 정작 더 중요한 건 신상이 공개되는 단계까지 가기 전에 개입할 수 있는 체계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층위에서 동시에 질문을 던집니다. 스토킹 신고 이후의 대응이 충분했는가, 반복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이는 고위험 가해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야간 귀가라는 일상적인 행위가 왜 아직도 안전하지 않은가. 개인의 조심만으로 답하기엔 너무 무거운 질문들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법과 제도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법률적 판단이나 전문적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