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소촉법) 개정 (재판지연, 피해자고통, 피해회복)
사기 피해를 입고 나서 가장 힘든 건 돈을 잃은 것 자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 어쩌면 더 지독한 고통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재판에 나오지 않아도 선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이 왜 필요했는지,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저의 경험과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법정에서 빈 의자만 보고 돌아온 피해자들
온라인 중고 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선고 기일에 법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석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배상명령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갔는데,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배상명령이란 형사재판 절차 안에서 법원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민사적 배상을 함께 명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별도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피해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인데, 피고인이 출석조차 하지 않으면 그 절차 자체가 멈춰버립니다.
제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미뤄지는 상황을 겪었을 때, 그 답답함이 어느 순간 분노보다 무기력함으로 바뀌더군요. 법정에서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하기로 한 날, 피고인이 나타나지 않아 재판이 통째로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현직 변호사의 말을 접했을 때 저는 그 피해자들의 심정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외국인 피고인 B 씨는 선고 기일 직전 중국으로 출국해버렸습니다.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미리 해두지 않은 탓에 사건은 미제(未濟) 상태, 즉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로 남게 됐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판결조차 받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8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재판, 무엇이 문제였나
2018년 기소된 A 씨의 사건은 무려 8년 가까이 진행 중입니다. A 씨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내면서도 반복적으로 소재불명 판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공시송달이란 피고인의 소재를 알 수 없을 때 법원 게시판 등에 서류를 공개 게시하는 방식으로 송달 효력을 인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절차를 완료하면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되는데, 문제는 그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공시송달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과거에 법원 출석 이력이 있거나 가끔이라도 전화 통화가 된 경우에는 소재탐지촉탁 및 불능보고서를 접수한 이후에도 공시송달이 허용되지 않아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출처: 대법원). A 씨도 바로 이 허점을 노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적했다가 2회 기일에 출석하겠다고 연락을 취해 절차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이후 다시 잠적하는 방식을 반복한 것입니다.
제가 이 사례를 읽으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제도의 빈틈을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동안 법이 이를 막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8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촉법 개정, 무엇이 바뀌나
이번에 통과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촉법) 개정안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피고인이 한 번 이상 공판기일에 출석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피고인의 진술 없이도 재판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변론종결기일에 출석해 선고기일을 고지받은 피고인이 이후 선고기일에 나타나지 않아도 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됩니다.
개정안이 적용되는 주요 범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기죄 및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 (법원조직법 제32조 제1항 제3호 각 목의 죄, 즉 예외적 단독재판부 관할 범죄)
- 위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범죄단체조직죄
- 법정형이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 이하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일반 범죄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을 초과하는 중범죄는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사기와 보이스피싱은 법정형과 무관하게 이 개정안이 적용됩니다. 개정법은 공포 즉시 시행되며, 이미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도 소급 적용됩니다(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선고가 빨라진다고 피해가 회복될까
제가 이 개정안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마냥 기뻐하기가 어렵더군요. 피해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판결문 한 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선고기일에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 실형이 선고됐다고 해도, 피고인이 이미 도주했거나 해외에 있다면 형 집행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항소 기간을 피고인이 인지하지 못해 상소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형사소송법 제345조에 따른 상소권회복 청구를 통해 불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는 합니다. 여기서 상소권회복 청구란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상소 기간을 놓쳤을 때 이를 되살려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제 경험상 어떤 문제든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판 지연 문제는 이번 개정으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겠지만, 피해 회복의 완성을 위해서는 출국금지 조치의 적시 적용, 피해 재산 추적 및 환수, 배상명령의 집행력 강화 같은 후속 제도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판결이 나왔는데 집행할 수 있는 재산도, 신병도 없다면 피해자에게 그 판결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재판이 피해자에게 갖는 의미는 단순히 결과를 통보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피해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법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촉법 개정은 분명 의미 있는 출발점입니다. 다만 출발점에서 멈추지 않고, 피해자가 실제로 회복될 수 있는 구조까지 제도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법이 그 방향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법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